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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아키비스트가 선택한 오늘의 무게 | 아카이브랩 안대진 대표
변순영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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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 454호
날짜
2020-09-24

게릴라 아키비스트가 선택한 오늘의 무게

기록은 늙지 않는다. 사건은 시간과 공간의 조건 속에서 가능하지만, 사건의 기록은 영원성을 갖는다. 매일같이 수집되고, 기록되고, 어떤 가치에 따라 일부만이 선택되어 최후에 보존되는 기록, 아카이브의 이야기이다.
아카이브랩 의 사무실이 위치한 청운동 오르막길을 오르며, 로이스 로리(Lois Lowry)의 소설, 『기억전달자(The Giver)』를 떠올렸다. ‘사물 저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소년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로 선택되어 세계 전체의 기억을 전달받는다. 그에게 기억을 전달하는 ‘이 일’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 말하는 기억전달자. 그가 망설이는 조너스에게 되묻는다.
“중요한 건, ‘선택’ 그 자체란 말이지?”
선택하는 자격과 책임을 가진 자가 감당해야 할 무게란 어떤 것일까? 민간영역 아카이브 활성화를 목표로 2016년에 시작된 아카이브랩은 누구에게나 대체로 괜찮은 연구소이고자 하는 바람으로 만들어졌다. 1997 외환위기, 4.16 기억저장소, 세월호 특조위, 최근의 코로나19 자원봉사 기록 수집 등등 이들의 손을 거쳐 간 수많은 기억들이 영원히 늙지 않는 아카이브로 보존되고 성장하고 있다. 기억전달자가 해가 될 리는 없지 않은가. 대체로 무해한 연구소, 아카이브랩의 발랄한 행보를 묻기 위해 안대진 대표를 만났다.
역사와 기록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대중적으로 넓어진 것 같다. 아카이브랩에 대해 소개해 달라.
아카이브랩은 우선 ‘대체로 무해한 아카이브 연구소’라 말할 수 있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의 선임연구원으로 만난 셋이서 시작했다. 처음 회사를 만들 때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Noel Adams)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지구를 ‘대체로 무해함(mostly harmless)’이라고 설명한 표현에서 착안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무엇을 할지 몰랐다. 복잡하고 너무 높은 사양의 아카이브를 만들어서 감당이 안 되어 지속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놓으면 대체로 무해한, 그런 아카이브를 지향한다. 적어도 ‘해만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또한 아카이브랩은 게릴라 아키비스트이다. 우리나라 공공기록 관리는 안정적인 자원과 시스템에 기반해서 안착되어 있다. 스스로 비주류이며, 공공에서 잘 다루지 않는 민간영역 아카이빙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우리 연구소는 최근 몇 년 동안 게릴라처럼 30~40개 프로젝트를 닥치는 대로 해왔다. 게릴라 아키비스트라는 표현처럼 작지만 가치 있는 아카이브를 많이 해왔다.
우리나라 공공기록물 관리법이 2000년에 시행되면서, 중앙부처, 행정기관, 지자체에 기록전문가의 의무 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공 분야 기록관리 부분은 상당 부분 체계화되고 있는 것 같다. 기록전문가를 아키비스트라 불러도 무방한가?
엄밀히 말하면, 아키비스트와 기록전문가 연구직은 다른 것 같다. 아키비스트는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아카이브와 기록이 혼용되어 사용되곤 하는데, 전통적인 개념의 아카이브는 사실 생산된 기록의 2~5% 정도 사료에 해당하는 보존 기록만을 말한다.공공기록물 관리법에서 규정되는 기록전문가는 오히려 레코드 매니저이다. 레코드 매니저는 아카이브가 아닌 기록센터 같은 곳에서 일한다. 아키비스트가 아카이브 보존 기록을 주로 다루는 전문직이라고 한다면, 기록전문가는 레코드 매니저로서 조직의 기록관리 기능적 역할에 한정된다.한편 랜달 C. 지머슨의 책 『기록의 힘: 기억, 설명책임성, 사회정의』에 따르면 아키비스트는 역사적으로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왔다. 지배계층의 부나 권력을 인정하기 위한 서류를 보관하는 문지기 역할로서 존재해왔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아키비스트는 민주사회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부각되고, 아키비스트들의 사회 참여도 점점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카트리나 재난이라든지,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 9.11테러, 월가 점령운동 등의 사건 현장에 아키비스트들이 소속을 불문하고 활동가처럼 참여해왔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 때 아키비스트들의 사회참여가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책무가 부각되었다. 아키비스트는 기록이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지를 기술하는 것이다. 아키비스트의 권력이란 아키비스트가 선택한 것만 역사로 남는다는 것인데, 그가 가진 힘을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할 것인가? 아카이브에 남길 기록을 선별하고 평가하는 일,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아키비스트는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록 문화 강국인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이 중립적 기술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객관성이나 중립성이라는 실체는 없으며, 가능하지도 않다. 아키비스트 개인의 가치판단에 따라서 이 기록을 남길지 말지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아키비스트가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운드 디자인 등 음악인으로서의 이력도 소유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기록관리, 체계적 정리 등의 직무 능력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력인데, 어떻게 현재의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에 이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일맥상통한다. IT업계에서도 일했었는데, 꼼꼼하게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사운드 엔지니어들은 그들만의 정리 매뉴얼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디테일하다. 작곡할 때 음원 샘플이나 테이크(take)들을 정리하는 것에도 자기만의 체계가 있다. 녹음 파일명을 입력하는 다양한 법칙도 있다. 모든 분야에 기록관리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연대기적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도 일맥상통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같은 현대미술가들은 아키비스트와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평생 아카이빙을 해온 사람들이다. 예술인이건 음악인이건 뭔가 아카이빙하고 정리하는 것은 성향의 문제이지, 직업의 문제는 아니다.
기록물을 ‘기록문화유산’으로 재평가하는 것은 아카이브에 대한 비교적 최근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카이브랩은 민간영역 기록문화 대중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민간영역의 기록관리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가?
난장이의 아카이브이자, 일상의 아카이브이다. 역사학의 주역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변변한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비주류들의 역사, 서발턴(subaltern) 역사학이 생겨난 맥락과 비슷하다. 힘 있는 계급, 권력자 중심의 역사 서술이 중심이었다가 서민들의 생생한 역사, 민초들의 역사를 그들의 관점에서 서술하려는 움직임으로 변한 지점이 있다. 그것의 기록학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공공에서 기록한 것만 나중에 남는다면, 총체적 아카이빙이 안 될 것이다. 위쪽의 시선과 아래쪽의 시선이 다양하게 있어서 그 총합으로 아카이브가 되어야 기울어진 균형을 맞출 수 있다.사실 공공은 너무 비대하고 느리다. 관료조직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다. 공공기록도 관련법이 만들어지고 그나마 정착이 되었지만 아직도 문제가 산재해 있다. 특히 공공영역의 정보화 사업이 문제이다. 제대로 된 기록 시스템이 부족하다. 여전히 종이 기록 프로세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오히려 적용이 빠르다. 기존에 구축된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공기록 시스템은 해외 선진 사례나 표준 원칙에 너무 얽매이는데, 민간에는 안 맞는 경우가 많다. 아카이브랩은 이런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민간에 맞는 방법론을 적용해왔다.
공공 영역에서의 기록관리도 안정적인 재원 투입과 조직의 이해, 전문 인력, 지속적인 관리 계획이 없이는 단순 초기 하드웨어 구축에 머무르는 사례를 자주 본다. 관리되지 않고, 중도 운영 중단되는 아카이브 사이트들이 많다. 하물며 민간영역의 기록관리는 더욱 열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영역 아카이빙은 지속 가능한가?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아프리카에 필요한 적정 기술이 있듯이, 민간에서 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록관리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골디락스(Goldilocks) 기록관리’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지난해에 했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상태인 골디락스(Goldilocks)처럼 민간이 소화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방법론과 신기술을 포함한 시스템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다. 아카이브가 요즘 붐이다. 그래서 그냥 막연히 시작해보려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벤트로 시작하면 일회성으로 끝난다. 지속할 의지가 필요하다.두 번째는 단체의 사명이나 비전과 연결해서 아카이브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해야 한다. 전문 인력을 데려오지 않아도 최소한 담당자와 담당 업무로 지정해야 지속된다. 인프라 문제, 소프트웨어 문제를 넘어, 업무 관리 시스템도 없어서 일상적인 업무 기록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오픈소스 시스템은 이런 면에서 지속 가능하다. 요즘 구독경제가 되면서 아카이브와 관련된 툴도 많이 만들어졌고, 우리 역시 보급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산도 필요하다.
전통적인 아카이브를 떠올리면 수북한 문서 자료들이 분류되어 있는 도서관 자료실 이미지가 떠오른다. 현재 디지털 환경이 빠르게 정착되면서 기록과 데이터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기록관리 시스템에서 오픈소스 전략이라는 게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오픈소스라는 것은 소스 코드를 공개한다는 것으로, 90년대 후반에 시작된 오픈소스 운동을 말한다. 스티브 잡스가 ‘바퀴를 재발명하지 말자’고 한 것에 빗대어 말하자면, 똑같은 개발을 각개로 반복할 필요가 없다. 일례로 우리나라 각 지자체별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따로 개발하는 경우를 보지 않았나? 효율적으로 한곳에서 만들어 공개하고, 다른 필요한 곳에서 같이 쓰면서, 각자에게 맞게 조금씩 바꾸되, 그 여러 개의 코드를 모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더 좋아지지 않겠냐는 것이 바로 오픈소스의 철학이다. 오픈소스 시스템을 쓸 때 조건이 있다. 누구나 이것을 마음대로 쓰되, 개편했을 경우 그 내용을 커뮤니티에 공개해서, 앞으로의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다는 조건이다.산업계에서 많이 쓰는 지표인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 수익률)로 얘기하자면, 오픈소스의 ROI는 지난 20년 동안 이미 증명되었다. 투자에 비해 효과가 훨씬 크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오픈소스 리눅스 계열로 핵심 부분은 거의 교체했다. 2018년에 세계 최대 오픈소스 코드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GitHub)를 인수했으며, 지금은 거의 오픈소스 기업이라 해도 무방하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사업의 혁신과 생태계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오픈소스 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단일 공급 체계에서는 소프트웨어가 빨리빨리 혁신되지 못하고, 결국 시대에 낙오된다.문화예술 공공기관에서 가령, 문화예술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컬렉션 관리 시스템을 오픈소스로 만들어 공개하면, 여러 문화예술 기관에서 사용해 보면서 각자에게 맞게 필요한 기능들을 보강하고 개작하면서 쓸 수 있다. 박물관에서 쓰면서 조금 바꾸고, 미술관에서 쓰면서 또 바꾸고, 이렇게 오픈소스 코드들이 모이면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계속 혁신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
기록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분류한다는 게 막상 쉬운 것 같아도 어렵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 기록물의 경우, 창작 결과물뿐만 아니라 과정 중심 프로젝트 등 창작 과정에 대한 기록물 등 어디서부터 기록, 수집, 저장해야 하는지 난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아카이빙 원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결과물만 수집되는 사례가 많고,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예술 분야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건축 분야에 있는데,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이 목천 아카이브를 만들 때, 건축이라는 결과물을 어떻게 아카이빙할 것인지를 먼저 연구하면서 실행했다. 1세대 건축가들부터 최근 활동하는 건축가들까지 다양하게 인터뷰하면서, 과거 건축 청사진에서부터 현대의 오토캐드 작업까지, 건축 계약부터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등등 모든 단계별 샘플링을 했다. 그 결과, 현장 답사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공통 단계를 발견하게 되었고, 정면, 측면, 실내 등 반드시 촬영하는 사진 구도를 공동 컷으로 찾아내고, 각 과정을 아카이브의 단계로 도출시켰다.예술 분야가 다양하지만 디지털아트, 무용 등등 장르별로 샘플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에 아카이빙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경우가 있다. 리서치한 것을 나열하는 작품의 경우가 그렇다. 이런 경우 아카이빙 관점과 프로젝트 자체의 아카이빙하는 관점은 다를 수 있다. 현대미술가들은 기존 아카이빙 원칙인 중립적, 객관적 디스크립션과 달리 오히려 반대로 기술하고, 비틀어 자유롭게 기술하기도 한다. 보존 기준과 아카이빙 원칙은 다를 수 있으며, 아카이빙과 관련된 예술 작품이 기존의 아카이빙 원칙을 무시하고 작가가 자유롭게 수집해도, 그 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아키비스트는 주관적으로 가치평가를 하게 되고, 무엇을 남기고 보존할 것인가를 정하게 되는데,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아카이브와 프로젝트 결과물 아카이빙을 구분해야 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나름 합의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아카이빙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혁신 적용에 대해 관심이 많아 보인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아카이빙 분야에 가져올 혁신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 기술을 예찬하는 부류와 반대하는 부류가 있다. 처음 블록체인이 나왔을 때 기록학 분야에서도 적용 여부를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나는 기술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 얘기한 것처럼, 기술이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업무 양상 전반을 좌지우지한다. 2017년 국가기록원 R&D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기록을 자동 분류하는 테스트를 해봤다. 몇 만 건의 샘플이라 제한적이었지만, 결과는 96~97% 정확도가 나왔다. 오히려 사람이 분류한 것보다 더 나은 분류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것을 좀 더 연구해서 업무 시스템에 탑재한다면 적어도 사람이 잘못 분류한 것을 수정하고, 제목만 입력해도 알맞은 분류를 제시해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와 같은 기술은 기록관리와 매우 밀접하다. 물론 적용 분야는 제한적이지만, 문서를 분류하거나 필요한 문서를 찾아주고, 개인 리포트를 찾아주는 기능만 해도 매우 도움이 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단순 잡무는 기계에게 맡기고, 사람은 알고리즘 프로세스 테스트를 관리하는 관리자 역할을 하면 된다. 기술이 실무 양상을 주도한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준비되지 못한 채로 빠르게 새로운 실험들이 바로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비대면 예술 창작, 예술 감상이라는 환경이 무척 낯설기도 하고, 이러한 제약 속에서 부단히 새로운 창작 방법론을 찾기 위해 현장 예술가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다. 아키비스트로서 코로나19 시대의 예술사가 어떻게 기록되고 보존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려운 문제다. 코로나19 시대에 문화예술인들의 피해가 크다. 문화예술 분야가 컨택트를 통해 의미가 커지는 영역이다 보니 더욱 어렵다. 기술주의 전략처럼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새로 대두된 가치가 좋건 나쁘건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혁신에 직면했다. 오히려 비대면 코로나 환경에 맞는 전략을 고민하는 계기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팬데믹 상황을 아카이빙하는 것은 기록학에서 익숙하다. 일종의 재난 아카이브이다. 핵심은 팬데믹 이후에 문화예술인들의 행위나 일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맥락을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예술 향유자의 관점에서 힌트를 얻자면, 코로나 시대의 기술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수밖에 없다.아키비스트 관점이 아니라 예술 공동체만의 사회적 기억이 있을 것이다.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책이 있는데, 카드리나 재난 사태 등 현대 재난 상황을 분석한 에세이이다. 이 책에 따르면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의 유대가 공고해지고 이타적이 되는 등 오히려 유토피아를 경험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재난 상황이 유토피아적 경험으로 승화될지 반대일지는 모른다. 어쩄거나 아키비스트나 역사가는 팬데믹 상황의 예술사를 사후적으로 기술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일단 먹고, 살아남아야 한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도 창작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의 기록관리에서 아카이브를 어떻게 활용할지, 무엇에 집중하고, 특성화해야 하는가?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회 발표 내용 중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예술인과 작품 DB가 없다는 내용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여러 DB가 있지만 부분적이었고,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조차 종합적인 작가 DB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오픈소스 전략이 필요하다.예술 아카이브는 작가들과의 접점을 찾아야 하는데, 기관의 아카이브와 작가의 교류 방식 설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령 국립현대미술관 정보자료실과 아르코 아카이브를 아티스트가 재해석하는 아트 프로젝트 등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미술계에서 아카이브를 언급하는 세미나는 많이 했었다. 세미나는 이제 그만하고,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문화예술에 제대로 된 아카이브 시스템, 컬렉션 관리 시스템 등도 필요하다. 일반 컬렉션 관리 시스템이 예술 기관에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엑셀파일로 된 작품 목록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의 새로운 컬렉션 관리 시스템과 DB를 보면 너무 멋있다. 모마(MOMA)와 Artefactual Inc.가 합착해 만든 바인더(Binder)라는 온라인·미디어·디지털아트 등의 디지털 보존 관리 소프트웨어도 참고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현대미술이 디지털아트로 많이 바뀌면서 아카이빙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디지털아트를 구성하는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파일의 다양한 재현형을 보존하고 관리 가능하도록 만들어낸 좋은 사례이다. 예술가와 아키비스트와의 협업도 중요하다. 서로의 분야를 좀 더 이해하려는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사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개인이 아카이브를 실천한다고 할 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민초들의 아카이브라는 가치를 남길 수 있을까?
개인 아카이브는 왜 하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일기 같은 자기 기록만 모으는 아카이브가 있을 수 있고, 여행 사진만 모으는 아카이브도 있다. 서태지 아카이브, 조용필 아카이브처럼 팬덤으로 만들어지는 사례도 있다. 개인 아카이브에서 좋은 것만 남기려는 경우가 많은데, 아카이브는 인스타그램이 아니다. 자화자찬하려고 만든다면, 제대로 된 아카이브라 할 수 없다.나만 볼 것인지, 가족까지 볼 것인지, 완전 공개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예전에 기업가나 복지가들이 자서전을 출판했다면, 요즘은 개인 아카이브를 만드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개인 아카이브에도 객관적 평가와 해석을 모두 포괄하는 아카이브 관점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1차 세계대전부터 사람들의 일기를 모으는 대중관찰 아카이브 프로젝트(Mass Observation Archives)가 있었다. 인구통계조사와 같은 관점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사람들의 일기, 수기 등 일상 기록이 수집되었고,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다시 부활되면서 매년 5월 12일마다 영국 사람들의 개인 기록을 수집하는 프로젝트로 발전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한국 버전으로 한국국가기록연구원에서 '5월 12일 일기수집'이라는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했었다. 정말 모아보면 다르다. 보통 사람들의 주말 패턴, 여가 생활 등 동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이 모이면 대단한 가치를 발굴해 낼 수 있다.
이상적인 아키비스트의 역량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앞으로 아카이브랩이 가고 싶은 길은 어떤 길인가?
선별 평가하는 게 전통적인 아키비스트의 역량이기 때문에 나만의 관점과 사물을 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이젠 기관에서도 백서를 만들기보다 디지털 아카이브로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웹 기반 자료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웹적 사고도 중요하고, 문서의 인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영상 트렌드도 알아야 한다. 아카이빙도 분야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실무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아카이브도 결국 드러나는 게 전시 형식으로 보여주다 보니, 그러한 역량들이 요구된다. 고민이 담긴 아카이브 포털과 아닌 것과 차이가 크다.
앞으로 더 완성도 있는 아카이브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 돈을 많이 투입하고, 공들인 기존 아카이브들도 이용자가 너무 적다. 아카이브는 대부분 오프라인 공간이 없는 디지털 아카이브가 많은데, 그래서 더욱 이용자와의 접점이 어딘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 대중들이 아카이브 활용을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아카이브 이용자의 영역까지 살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