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미련에 생각이 머물면
오늘을 온전히 살 수가 없는 것
우리는 많은 불빛 켜놓고 살아
진정한 삶마저 가린 것 아닌지
마음 내려놓아야 선명히 보여
새벽예불을 나서는데 달빛을 받은 기와지붕 위에 소복이 내린 하얀 눈이 반짝입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합니다. 눈 내리는 날 하늘은 푸른 바다처럼 깊고도 별이 더 초롱하다는 것을 가슴 시리도록 좋아했습니다. 마당에도 마치 별들이 밤사이 내려온 듯합니다. 이제 하룻밤만 더 자면 30년을 가꾸어 온 미황사를 떠나 또 다른 수행처를 찾아 걸어가야 합니다. 함께했던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빛이 역력합니다. 사실 나는 새로운 희망의 일들을 생각하며 움직이고 있는데 사람들은 벌써 과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까맣게 잊은 이야기들이 문득문득 찾아온 이들의 말에서 튀어나올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인생을 마치는 이별을 하듯 천천히 그 마음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0년 전 법정 스님이 병실에서 가까운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초대하여 눈빛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고마운 마음을 나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회향을 할 때는 그 모습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것이 오늘 내가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 스님 참사람의 향기 지도법사
매일 새벽 눈을 뜨면 마음으로 발원하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감탄사입니다. ‘아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눈을 뜰 수 있다니.’ 내가 사는 곳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과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날마다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완성되게 살았습니다. 어제를 떠나 오늘을 사는 방법입니다. 어제의 생각에 머물면 오늘을 온전히 살 수 없습니다. 그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30년을 하루같이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떠나는 마당에서도 1%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에서도 분명히 그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고려시대 나옹선사의 시구를 큰소리로 내 귀에 들리도록 읽는 것입니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道)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벗어나게 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심경에 이르고 열반을 얻으리라.” 한마디로 깨달음을 이루는 부처나 관세음보살이 되어 모습만으로도, 이름만으로도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나를 미황사로 바꾸어서 살았습니다. 내가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장소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반가움에 자랑하고 싶은 설레는 곳이 있는지요, 지치고 힘이 들 때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휴식을 주는 자신만의 케렌시아는 있는지요. 그런 장소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이면 대빗자루 들고 마당을 쓸고, 한문학당에 찾아온 아이들과 한여름 밤 마당에 누워서 별을 감상했습니다. “스님, 군대에서 별을 실컷 보고 왔어요. 그 별을 보고 있는데 미황사 별이 그리워서 전역하자마자 왔어요. 그런데 떠나신다면서요.” 10여년 전 한문학당 별자리 수업을 마치고도 늦도록 홀로 자하루 계단에 앉아 별자리를 헤던 초등학교 5학년 표승현 학생입니다. 가슴에 담았던 작은별이 그렇게 청년별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1200여년 된 한 장소가 온전하게 시대의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 주는 든든한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날씨가 차가울수록 별은 더 영롱하게 빛이 납니다. 사람의 마음도 답답함 속에서 오히려 비약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빛을 너무 많이 켜놓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불을 켜놓았으나 기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진정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고 미망 속에 두서없이 켜놓은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거절할 줄 모르는 자비심에 너무 많은 불들을 켜놓아 별빛을 가리는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내려놓으니 선명하게 보입니다. 더 깊어지는 공부가 아름다운 회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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